1. 도착 - 준비되지 않는 자에겐, 노숙뿐.
YKK 토론토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었다. 공항 특유의 큰 유리를 통하여 광활하게 펼처진 활주로가 보였다. 밤이 되어 켜진 주황색 불빛들이 이불이 되어 덮혀있는 활주로는 앞으로 펼쳐질 나의 도전과 열정에 관하여 나르시시적인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드디어 왔다 캐나다’, 가슴이 뛰었고 지나가다 들리는 영어에 괜시리 같은 집단이라도 된 듯 혼잣말로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보단 간단했던 입국수속을 마친 뒤 수속장을 빠져나왔다.
짐검색대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렸다. 밤이 늦어그런지 여행객보단 집으로 귀가하는 본래 토론토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한국 사람이 긴 여행을 마친 뒤 인천공항에 돌아온 듯이, 그들의 장기간의 비행으로 인한 지친 기색은 어느새 사려져 보였고 집으로 귀가하는 기쁨에 들뜬 것처럼 보였다. 어떤이들은 에어플레인 모드를 해제하고 지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가족여행을 다녀온 듯한 사람들은 서로의 짐을 챙겨주기 위해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한번 바라보며, 다시금 내 위치를 생각하고 짐 검색대를 향했다. 그리고 나의 짐을 기다렸다.
한 20분쯤 기다렸을까, 에메랄드빛의 싸구려 23kg 캐리어 가방이 나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그 몸짓만한 캐리어를 짐검색대에서 찾아 꺼 내어 앉에있던 외투를 꺼내입었다. 다시 걸친 패딩조끼의 보온감에 가져오길 잘했다라는 언신 다행감을 느꼈다. 그렇게 짐을 챙긴 뒤 공항밖을 향해 나왔다. 입김까지 나오는 새벽두시의 공항 밖 새벽을 맞이하며, 처음밟는 캐나다 땅에 큰 의미 부여를 하듯, 주위를 둘러보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부푼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모든 지하철과 버스가 끊긴걸 깨달았다. 근처에 차갑고 우둑커니 서있는 시계탑을 마주보며 바라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를 향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토론토에 도착한 다른 캐나다인들이나 외국인들은 각자의 가족품 혹은 예약된 호텔버스로 사라졌고 내 머릿속은 점점 하얘져갔다.
당시 홀로 여행을 가본적 없었던 나는 준비하는 기간동안 숙소 예약이라는 기본적인 절차 조차 생각하지 못했었다. 당시 살아온 시간에 비추어 보았을 때, 당연히 대학에 오면 기숙사가 준비되었듯이, 친척집이 늘 같은 곳에서 나를 마주 해 주듯이, 주소 하나만 안다면, 숙박업소에 가기만 한다면 방이 있을것이고 그곳에서 머물면 된다라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조촐한 준비를 끝내고 몇 개의 숙박업소 리스트만 종이에 적은 채 이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그렇게 새벽 두시에 공항밖에 우두커니 서있게 되었다. 일렬종대로 서있는 택시드라이버와 리무진드라이버의 계속된 탑승 권유가 있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큰 지출인 오버나이트 즉 할증 붙는 택시요금을 생각하니 최저예산을 가지고 온 나로써는 거절할수 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그때 캐나다를 다녀온 경험이있는 사촌누나가 야간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게 떠올랐다. 그렇게, ‘익스큐즈미’와 ‘하우캔아이 겟데어’를 남발하면서 정류소를 찾아해맸다. 한 두개의 횡단보도를 건넌 뒤 모퉁이를 지나자 붉은기둥의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다행히 다운타운 가는 버스는 늦은시간 까지 운행했고, 영어를 문장으로 못하지만, 적혀있는 단어로 대충 출발하는 버스의 목적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머물기로 결정한 ‘하이-호스텔’이란 호스텔은 다운타운에 위치 해 있었기 때문에 공항지하철 역인 킹스턴 에서 한번더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갈수있는 방법은 오직 이거 하나라는 생각으로 말도안되는 영어와 딱 하나가지고있는 지도로 물어물어 버스를 두번 환승하고 다운타운에 내렸다.
처음 버스에선 온통 무표정의 사람들이타서 경험이 없던 나는 겁을 잔뜩 먹었지만 새벽에 버스탄사람들이라 피곤해서 그랬겠구나 하며 그중 착하게 생긴 흑인계 캐네디언에게 길을 묻자 답변을 짧지만 정확 하게 잘 설명해주었다. 다운타운을 향한 두 번째 버스엔 술집들이 번화한 거리기때문에 승객들중 몇명의 취객이있었다. 자꾸 나를 쳐다보는것 같아 아주 친절하게 눈을 아래로 향한채 에메랄드 캐리어를 꼭 안으며 다운타운에 도착하길 바랬다. 그렇게 드라이버의 도움을 받아 조심히 내린뒤, 한숨을 돌리기도 전, 시각은 새벽 4시를 가리켰고, 생판모르는곳에 캐리어 하나와 백팩을 맨 채 두발로 서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길거리엔 취객과 한산한 공기뿐이어서 어쩔수 없이 택시를 탈수밖에 없었다. 기사님에게 주소를 보여준 뒤 곧장 출발한 택시에서 의례적인 질문과 답변과 함께 몇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한화로 약 4만원 가량의 택시비를 지불한 뒤 그렇게 무사히 호스텔에 도착했다.
사실 이 호스텔에 묵기로 정했던 방식도 허술하면서도 어처구니 없기 짝이 없는데, 숙박업소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찾지 않았던 나는 비행기 안에서 가방에 챙겼던 몇페이지 안되는 워킹홀리데이 경험담을 담은 책을 꺼냈다. 책 부록 뒤편에 기재되어있는 숙박업소 리스트를 펼친 뒤 페이지 위에 펜을 왔다갔다 하면서 혼잣말로 스탑을 외치고 펜이 향한 곳으로 머물러 가자라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숙박업소를 정한 것이다.
호스텔 로비에 도착해, 가방을 맨채 (’이끈다’ 라는 표현이 맞겠다), 계단을 올라 리셉셔니스트를 찾았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밥-말리의 레게뮤직을 제외하고는 로비는 조용했고 몇분이 지나지 않아, 졸린눈을 비비며 방문에서 나온 백인 남성이 장기간의 비행으로 지쳐있는 20대 초반 동양인인 나를 맞이해주었다. 나의 행색과 상황을 대략 보더니 곧바로 방을 찾냐고 물었고, 예약하고자 한다 답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방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이럴수가 시간은 새벽다섯시를 향하는 시각에 23kg캐리어 하나 10kg백팩하나 들고 어딜가냐 말이다.
그래서 리셉셔니스트에게 나의 사정을 말한후 해가 뜰때까지 로비에서 '노숙'을 해야했다. 사물함같이 생긴 밴댕머신에서 맛대가리 없는 초콜릿바를 먹기위해 주섬주섬 동전을 꺼냈다. 그렇게 밤을 샜고 아침이 되서야 호스텔을 나와 마트에서 4.9불짜리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다음날 방이 있냐고 묻자 남은 한개가 있다하여 바로 예약했다.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본 친절한 프론터 직원이 락커를 이용하고 싶으나 자물쇠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나를 딱하게 봤는지 새 자물쇠를 무료로 주었다.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짐을 맡기고 간단한 샤워를 한후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였다.
어쨌거나 시작된 나의 캐나다 라이프. 원하던 대로 계획한 대로 시작은 못했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경험을 한것 같아 나름 뿌듯 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이건 시작이고 다시한번 내일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발을 내디더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2층 호스텔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4월의 꽃바람은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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